초짜 직원도 장인 뺨치는 실력… 상상초월 '초밥왕'의 정체
세계는 지금 DX혁명
2부 (4) 日 DX 혁신 이끄는 회전초밥업체 초밥으로 '비밀 연구기지'
'초밥 로봇'의 진화… 오늘 몇 접시 팔릴지 안다
초밥 접시에 IC칩 내장해 데이터 수집
20억 접시분 데이터를 AI 학습시켜
120종 메뉴 판매량 매일 시간대별 예측
어종별로 횟감 사용량 정확히 발주
11년 연속 회전초밥 체인 매출 1위
일본 오사카 외곽에 있는 한 회전초밥 가게. 소리를 내며 컨베이어벨트가 테이블 주위를 반복해 돈다. 그런데 이곳에는 손님이 한 명도 없다. ‘달그락’ 접시 쌓이는 소리 대신 가게 한쪽에 모인 직원들이 키보드를 두들기는 타격음이 적막을 깬다. 테이블에는 각종 정보기술(IT) 설비가 복잡하게 늘어서 있다.

회전초밥 점포와 IT 기업 사무실을 섞어놓은 듯한 이곳은 일본 최대 회전초밥 체인인 초밥으로의 비밀 연구기지다. 지난 15일 한국 언론 최초로 방문한 초밥으로 연구기지의 주소는 ‘비공개’였다. 정식 명칭도 없이 그저 ‘스튜디오’로 불린다. 이곳에서 초밥으로의 디지털 대전환(DX) 구상은 실증 실험을 거쳐 구체적인 형상을 갖춘다.
오사카는 회전초밥의 발상지로 불린다. 일본 전통음식 초밥에 제조업의 컨베이어벨트 시스템을 도입해 가격을 내리고, 회전율을 높이는 ‘박리다매’ 전략을 선보였다. 하지만 비밀연구기지에서 ‘박리다매가 기본전략일 것’이라는 추론은 순식간에 무너졌다.
외식업의 법칙을 바꾼 것은 IT였다. 초밥으로는 초밥을 만드는 순간부터 입에 들어갈 때까지 전 과정에 첨단기술을 접목했다. 한 주먹에 쌀알 320개를 쥔다는 장인의 손맛을 대신하는 것은 대당 150만~250만 엔 하는 초밥용 밥(샤리) 제조 로봇이다. 초밥 로봇은 초당 한 개씩, 1분에 60개의 샤리를 쥔다. 이 덕분에 초짜 직원도 초밥용 횟감(네타)을 얹어서 1분에 열 개의 초밥을 만들 수 있다.
초밥이 얼마나 팔릴지도 자동으로 예상한다. 매일 오후 2시면 초밥으로의 644개 전 지점에는 당일 점포별 예상 매출과 판매량이 전달된다. 20년 넘게 확보한 접시 20억 개 분량의 데이터를 인공지능(AI)이 학습한 결과다. 미즈토메 고이치 푸드앤드라이프컴퍼니(초밥으로 운영사) 대표는 “맛있는 초밥을 저렴하게 제공하기 위한 최적의 길로 DX를 선택했다”라고 했다.
"내일 참치초밥 126 접시 팔릴 것"…'AI 초밥왕'이 예측해 횟감 주문

무척이나 낯설었다. 손님들이 부지런히 초밥 접시를 비우고, ‘도리아에즈 비루(우선 맥주)’라며 즐거운 표정으로 한잔 들이켜는 모습 대신 사람 한 명 없이 ‘굴러가는’ 텅 빈 대형 회전초밥 매장을 볼 것이라고는 상상도 못 했기 때문이다. 지난 15일 일본외신기자센터(FPCJ) 초청으로 방문한 초밥으로의 비밀 연구기지 ‘스튜디오’는 많은 것을 꽁꽁 싸맨 듯 숨겨놓은 공간이었다. 번듯한 이름도 없고 주소조차 ‘비공개’로 막아놓은 이곳은 경쟁사들이 위치를 짐작하지 못하도록 외관도 사진을 찍을 수 없었다.
AI로 ‘맞춤형 정량생산’
일본 최대 회전초밥 업체가 ‘스튜디오’를 이처럼 비장(秘藏)의 공간으로 삼은 것은 일본 요식업의 판도를 바꾼 디지털 대전환(DX) 성공사례가 잇따라 이곳에서 탄생했기 때문이다. 1시간에 3600개의 초밥용 밥(샤리)을 쥔다는 초밥 로봇을 도입하고, 각 좌석의 고객에게 전용 레인으로 주문한 상품을 전달하는 ‘오토 웨이터’ 시스템을 선보이는 실험이 이뤄진 곳이 바로 ‘스튜디오’다. 그런 무게를 느끼는지 객석 너머 주방 자리에 수많은 전선과 정보기술(IT) 기기 속에 파묻혀 각종 데이터를 살펴보는 직원들의 표정은 무척이나 진중했다.
일본 전통음식인 초밥에 컨베이어벨트라는 ‘포드주의’의 핵심 요소를 결합해 요식업에 ‘제조 혁명’을 일으켰던 회전초밥은 이제 IT에 힘입어 ‘맞춤형 정량생산’이라는 또 한 번의 도약을 이뤘다.
스시로가 올 1월 말 도입한 판매 예측 시스템은 일반의 예상을 훌쩍 뛰어넘는 수준이다. 전국 644개 지점에 ‘참치 초밥 120 접시, 방어 초밥 80 접시’ 하는 식으로 120종류에 달하는 메뉴가 몇 접시씩 팔릴지를 알려준다. 점장은 이 예상치를 바탕으로 횟감을 어종별로 얼마나 해동하고 손질할지 판단한다. 다카하시 히로아키 초밥으로 난바암자점장은 “매일 판매량을 예측할 수 있게 됨에 따라 횟감 사용량을 정확히 모르는 신입사원도 횟감 발주가 가능해졌다”라고 말했다.
당일뿐 아니라 앞으로 2주 동안 점포당 매출도 1일 단위로 예측할 수 있다. 각 점장은 이 데이터를 근거로 부족할 것으로 예상되는 음식 재료를 미리 발주하고, 직원들을 집중적으로 투입해 근무 시간대를 정할 수 있다. 사카구치 유타카 초밥으로 정보시스템 부장은 “예측 시스템이 진화하면서 시판 전 신메뉴와 3개월 후 매출까지 예상할 수 있다”라고 말했다.
날씨와 요일, 시간대에 따른 판매량도 예측할 수 있다. 심지어 현재 매장 안의 고객 수와 각각의 고객이 몇 분 전에 식사를 시작했는지에 따라 초밥이 몇 접시 더 팔릴지도 가늠할 수 있다. 각 점포는 이 숫자에 맞춰 밥을 추가로 지을지, 직원들을 일반 초밥(니기리 초밥) 제작 파트에 집중적으로 배치할지, 군함 초밥(김으로 둘러싼 초밥 위에 생선이나 생선알을 얹은 것) 파트로 보낼지를 판단한다.
‘200억 접시’ 빅데이터가 자산
이런 일이 가능한 건 스시로가 일본 외식업계에서 식품과 IT를 본격적으로 접목한 선구 기업이기 때문이다. 초밥으로는 2002년 ‘회전초밥 종합 관리 시스템’을 업계 최초로 도입했다. 모든 초밥 접시에 IC칩을 내장해 판매 데이터를 수집했다.
축적한 판매자료는 빅데이터라고 부르기에 손색이 없다. 1년 동안 일본 인구보다 많은 1억 5776만 8000명이 스시로를 방문한다. 한 해 팔리는 초밥은 16억 1600만 개, 초당 3 접시가 팔려나간다. 길이로 늘어놓으면 24만 2300㎞로 지구를 6바퀴 돌 수 있다. 종합관리 시스템을 통해 20년 동안 쌓인 데이터는 접시 200억 개 분량이었다. 초밥으로는 이 가운데 20억 개 분의 데이터를 인공지능(AI)에 학습시켰다.
참치 붉은 살(아카미) 초밥 1 접시를 단돈 100엔(지난 10월 120~150엔으로 가격 인상)에 내놓는 회사가 이렇게까지 IT에 공을 들이는 이유는 뭘까. 컨베이어벨트 위 초밥은 손님이 집을 때까지 하염없이 돌지 않는다. 참치 초밥은 컨베이어벨트 위를 350m(약 40분) 돌 동안 선택받지 못하면 자동으로 폐기된다. 모양과 신선도, 맛이 떨어지기 시작하는 시점이다. 마요네즈가 들어간 초밥은 금방 굳기에 270m를 돌면 폐기된다.
맛있는 초밥을 저렴한 가격에 제공하는 가장 확실한 방법은 버려지는 초밥을 줄이는 것이라는 게 초밥으로의 결론이다. 팔릴 만큼만 만드는 게 버리는 양을 줄이는 최선의 방책이다. 이에 따라 초밥이 종류별로 정확히 몇 접시씩 팔릴지 예측하는 게 중요했다.
데이터가 쌓이면서 지역색이 강한 일본 전 지점에 대한 맞춤형 대응까지 가능해졌다. AI를 활용한 판매예측 시스템을 통해 초밥으로는 2023회계 연도(2023년 10월~2024년 9월) 경상이익을 전년 대비 19억 엔(약 182억 원) 늘릴 것으로 예상된다. 초밥으로는 2011년 998억 엔의 매출을 올려 회전초밥 체인 1위에 올라선 이후 올해(2813억 엔)까지 11년 연속 매출 1위를 놓치지 않고 있다.
만성 인력난도 덜어줄 것으로 기대된다. 좌석 수 236석의 오사카 난바암자점은 초밥으로 최대 점포 가운데 하나다. AI 예측 시스템을 도입한 이후 이 지점은 종업원이 22명에서 15명으로 줄었다.